자살률 세계 1위,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붙은 오명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자살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선진국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함께 꾸준히 상위를 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생활고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근거 있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자살 통계를 중심으로 자살문제 현황과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자는 10만명당 24.6명으로 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높은 자살률은 일본에서도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보다 높은 자살률을 기록해 왔고, 현재 우리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인구 1만명당 자살자 수는 약 15명으로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자살은 한일 양국의 공통된 사회문제라 하겠다.

코로나19로 자살자 수 급증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일상은 물론 사회 전체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그로 인해 영세 상인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수준의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비대면적 일상생활과 경기 침체는 사회적 고립과 생활 경제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국민이 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점차 그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말하는 수치들이 집계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자살 통계를 보면, 2019년과 비교해 2020년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20년 통계가 11월까지 밖에 확보되지 않아, 전체 자살률의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자살률이 2020년 하반기부터 2019년을 크게 웃돌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반기(1~6월)에는 2019년에 비해 자살자 수가 소폭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다가, 7월부터 매월 적게는 4%에서 많게는 43%까지 전년대비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4월 16일부터 5월 25일까지 ‘긴급사태 선언’을 통해 휴업 및 재택 근무, 개학 연기, 비대면 수업, 어린이집 휴원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는데, 긴급사태 선언 해제 이후부터 자살률이 크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휴업과 재택 근무, 개학 연기와 비대면 수업 등 긴급사태 선언이 해제됨에 따라 이전의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직장, 학교 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집단의식에 의해 억눌렸던 불안감과 고립감이 시간차를 두고 분출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설명이다.

한편, 기업의 휴업과 폐업, 소상공인들의 영업규제 등이 장기화되면서, 생활고를 겪는 사람들이 증가한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일본 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실업률 4%를 기점으로 현역세대(30~60대) 중심으로 자살자가 증감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여성 자살자 수 급증이 의미하는 것

통계수치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자살자 중 여성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부분이다. 전체 자살자 수가 증가한 것도 대부분이 여성 자살자 증가분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 수년간 경향을 보면 7:3 내지 6:4 정도로 남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2020년 통계를 보면, 합계에서는 약 5:5의 비율을 보이고 있고, 7월 이후에는 여성 비율이 남성 비율을 상회하여, 10월에는 65%를 차지했다. 전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여성 자살률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일까? 그 배경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의미 있는 추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개학 연기, 비대면 수업, 어린이집 휴원 등으로 인해,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경기 침체에 따른 해고나 급여 삭감 등 피고용자가 겪게 되는 노동환경 조정 조치에 따른 피해가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컸을 거라는 것이다. 즉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큰 서비스업과 소매업, 관광업 등은 여성 종사자가 많고 비정규직 비율도 높기 때문에, 해당 직종을 중심으로 여성의 고용환경이 악화되고 있음이 배경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두 가지 배경 모두 일본의 고질적 체질 문제, 즉 가부장적 역할 규범과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깊숙이 관련된다고 지적한다.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낳은 부작용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성별격차지수(GGI)를 보면, 일본은 전체 153개국 중에서 121위로, 특히 경제, 정치 분야에 대한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정규직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70~75% 수준에 불과하고, 비정규직 비율(2018년 기준)을 보더라도 남성이 21.2%인데 비해 여성은 55.3%로 두 배 이상 높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현재 내각 구성을 보더라도 여성 장관은 단 2명, 비율로는 10%에 불과하다. 지난 아베 정부 시절이 15.8%로 세계 113위를 기록했으니, 현재 순위는 더욱 하락했을 것이다.

아베 전 수상은 2013년 재임 시절, “지금 일본에서 가장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여성인력이다. 여성은 일본을 새로이 성장 궤도에 올려줄 원동력이다”라고 선언하며, 국가 성장전략 중 하나로 ‘여성활약 추진’을 내걸었다. 2015년에는 ‘여성활약 추진법’이 제정되어, 관리직 여성 비율 향상을 위한 실시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등 다양한 시책들이 추진됐다. 그 결과, 여성 고용은 일정 수준 증가했지만, 그 성과를 뜯어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아베 정권 7년 동안 여성 고용은 300만명 증가했지만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고, 여성 비정규직의 2019년 평균임금은 100만엔 미만이 44%, 100~190만엔 미만이 38.6% 등 저임금 근로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유인하여 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취지는 그럴싸하지만,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한 임시방편적 고용환경 조성과 양적 확대가 중시되어, 남녀 고용평등이나 사회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라는 평가를 면치 못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정부가 펼쳐놓은 불안정한 고용환경 하에서 코로나19라는 예견치 못한 위기가 더해지면서, 불안정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심각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코로나19는 국민 모두가 겪고 있는 공통된 위기다. 그 피해가 사회적 구조에 의해 더욱 조장되거나 편중된다면 이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해결과제

자연재해나 경제 위기가 자살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일본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자연재해와 자살률의 인과관계를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다. 코로나19는 예견치 못한 외부요인으로 인해 라이프 라인이 제한되고 개인·가족·사회를 고립시킨다는 점, 그리고 심각한 경기 침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자연재해와 경제 위기에 따른 부작용이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자연재해나 경제 위기라는 자살유발 요인이 발생한 직후보다는, 그 몇 개월 혹은 몇 년 후에 오히려 자살자 수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위기발생 시기와 자살률에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일본의 자살통계를 보더라도, 긴급사태 선언 중이었던 4, 5월에는 자살률이 오히려 줄었지만, 6월 이후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고립감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부적응, 사회서비스 마비로 인한 심신의 부담 증가, 경기 침체에 따른 생활고 가중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제시했다.

한국은 과연 어떠한 상황일까? 제한된 자료지만 확인 결과,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에 비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과 관리가 엄중하고, 국민적 단합과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회적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기간에 걸친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에 나타날지 모를 ‘시간차 위기’에 대해서도 충분한 모니터링과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자살 통계가 그 일례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젊은 여성이 코로나19 위기에 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그 배경에는 가부장적 사회통념과 노동시장 환경의 성별 격차라는 고질적 요인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성별 격차에 대한 문제는 일본을 빗대어 지적할 필요도 없을 만큼, 우리나라 또한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온 문제다. 앞서 인용한 성별 격차지수가 한국은 108위를 기록했고,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급여 격차 또한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바꿔가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약자의 의사 표출이 이전보다 신장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파고들며, 이제껏 미뤄왔던 사회적 과제를 가시화 시켜주고 있다. 코로나19의 유일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드러난 문제와 그 구조를 개선해 가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의 과제라 하겠다.